[에디터의 눈] 통합 챔프전 앞둔 최현미, 여전히 '불쌍한 탈북 복서'?

임재훈 기자 / 기사작성 : 2021-05-06 13: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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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최현미 인스타그램

 

국내 유일의 프로복싱 메이저 기구 세계 챔피언인 세계복싱협회(WBA) 슈퍼페더급(58.97㎏ 이하) 챔피언 최현미가 오는 15일(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세계복싱평의회(WBC)·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챔피언 테리 하퍼(영국)와 3대 기구 통합 타이틀전을 가질 예정인 가운데 그의 아버지인 최영춘 씨가 조선일보(5월 5일자 보도)와 한 인터뷰 내용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현재 최현미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 최영춘 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끔 스폰서를 서주던 기업들도 ‘요즘 탈북민들에게 지원하기 눈치 보인다’고 합디다. 어떻게 저희를 위해 불이익을 감수해달라고 합니까. 그 동안 감사했다며 다른 기업에 또 ‘앵벌이’하러 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로 사정이 더 안 좋아졌다. 2017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1년간 3000만원 받던 지원금도 못 받게 됐다.”고 전했다.

물론 어떤 명목의 어떤 지원금을 어떤 기준 때문에 받아오다가 어떤 상황 변화로 받지 못하게 됐다는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 씨는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지원이 어렵다 합니다. 외교는 잘 모르지만, 출신으로 인한 차별이 정당화될 만큼 중요한 대의가 있는 건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도 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최현미는 얼마 전까지 독일과 일본에서 귀화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결국 보도의 요지는 최현미가 여러 나라의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선택했음에도 문재인 정부 하의 각종 기관과 기업에서 최현미가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그에 대한 관심을 거둬들이고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오랜 기간 최현미의 소식을 전해온 기자로서 이 보도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고 ‘시장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최현미는 프로 선수다. 프로 선수가 자신의 상품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것에 정권 탓을 한다거나그 어떤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무의미 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최현미에 고개를 돌린 기관이나 기업들 역시 시대착오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부의 태도를 놓고 대한민국 전체의 분위기인양 일반화 시키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최현미가 국내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면 그 이유는 그가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거나 인기가 없는 탓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가 될 것이다.

기자가 최현미라는 복서를 취재해 온 이후 그가 단 한 번도 돈 걱정 없이 풍족한 타이틀전을 치른 적은 없었다. 번번이 타이틀을 박탈 당할 위기에 놓였었고, 잡혀 있던 경기가 무산될 위기도 여러 차례 맞았다.

기자는 최현미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 가급적이면 ‘탈북’이라는 단어를 담지 않아왔다.

 

▲ 사진: 최현미 인스타그램

 

그 이유는 최현미라는 복서가 지닌 ‘국내 유일의 메이저 프로복싱 기구 세계챔피언’이라는 가치가 ‘탈북 복서’라는 타이틀보다 상품성이나 스타성 면에서 훌륭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현미는 현재 게나디 골로프킨, 앤서니 조슈아 등 세계적인 스타 복서들을 보유한 '매치룸(Matchroom)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고 프로복싱의 본고장 미국과 유럽 무대에 진출해 있다.

야구 선수로 따지면 미국 메이저리그요, 축구 선수로 따지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해 있는 셈이다.

세계 최고의 무대로서 선수의 상품성을 인정 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대다. 최현미의 상품성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최현미의 탈북 전력이나 귀화 거절 같은 이슈는 최현미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흥미 요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프로복서로서 그의 상품성을 판단하는 데는 전혀 고려대상이 못 된다.

조선일보 보도에서 “최현미는 결국 지난해 11월 미국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해 한국을 떠났다. 모든 비용을 책임지는 대신 파이트머니를 나누는 조건으로 경기마다 계약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최영춘 씨는 “세계 챔피언이 돈이 없어서 방어전을 못 하고 있으니, 미국 쪽에서 ‘한국이 그렇게 못사는 나라였냐’고 묻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맞다. 냉정히 말해 한국 복싱 시장은 세계 최빈국 수준이다. 복싱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세계타이틀전을 그럴듯한 체육관에서도 치르기 어렵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민회관이나 군민회관 체육관을 빌려 치르거나 그도 안되면 차마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야외 특설링에서 치르기도 하는 것이 국내 현실이다.

 


한국 복싱 시장이 처한 극빈의 현실은 최현미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울러 파이트머니를 매니지먼트사와 나누는 것은 프로복싱에서는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최현미 만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는 말이다.

복서의 대전료는 복서 자신만이 독차지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의 경기를 도운 트레이너, 매니저, 프로모터들, 그리고 여러 훈련 스태프들과 나누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제 최현미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 진출해 세계의 프로모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생일대의 기회가 걸린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번 하퍼와의 경기는 특히 세계적인 스포츠 중계 채널인 스카이스포츠에서 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경기 실황을 중계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최현미를 ‘측은하고 불쌍한 탈북 복서’라는 이미지의 틀에 가둬놓는 대신 최고의 상품성과 스타성을 지닌 ‘여자 복싱의 박지성’ 내지 ‘여자 복싱의 류현진’으로 불리게 해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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