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모른다’ 말 듣기 싫어 고시공부 하듯 준비했다”

마수연 기자 / 기사작성 : 2018-07-02 13: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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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e-스포츠 전문 캐스터 정소림 인터뷰 - ①
사진 : 스포츠W

흔히들 한 장르 혹은 업종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 우리는 ‘베테랑’이라는 말을 붙인다. 그렇다면 10년을 넘어 20년을 향해 가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W가 19년 동안 ‘여성 게임 캐스터’로 살아온, 캐스터 계의 ‘전설’ 정소림을 만났다. e-스포츠의 시작부터 부흥기, 침체기와 재부흥기, 모든 시간을 함께 하며 유일무이한 여성 캐스터로 자리매김한 19년차 베테랑 캐스터 정소림에게 게임 캐스터로 보낸 긴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소개를 요청하는 기자의 말에 “게임 캐스터 정소림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던 그는 “e-스포츠에서 19년째 일을 하고 있다”는 간단한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소림이 캐스터 생활을 시작한 19년 전, 1999년은 국내에 스타크래프트 붐이 일던 시기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더욱 게임이 남성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기이기도 하다. e-스포츠가 막 첫 발을 내딛은 그 때, 정소림은 어떻게 게임 캐스터라는 일에 뛰어들게 됐을까.


이전까지 게임과 친하지 않았다는 정소림은 스타크래프트의 매력에 빠지며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가 너무 재밌어서 푹 빠져 살았는데, 그 때 아는 분의 추천을 받았다”며 “원래 아나운서나 리포터 일을 하고 있었는데, 게임도 좋아하니까 캐스터 오디션을 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ITV에서 캐스터 생활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작과 달리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선입견에 부딪혀야 했기 때문이다.


정소림은 “’여자가 게임에 대해 뭘 알겠어?’라는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게 깨진 지 몇 년 되지 않았다”며 “같은 말을 해도 남성 캐스터가 할 때와 달리 내 이야기는 잘 믿지 않는다. 신뢰감을 가지지 않고 봐서 그렇다”고 답했다.


‘게임 모른다’는 말이 너무나도 듣기 싫었던 정소림은 그래서 더더욱 게임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그는 많은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여자’와 ‘애 엄마’라는 두 가지 이유만으로 실력조차 보지 않은 채 정소림을 배제하는 일도 허다했다.


대놓고 ‘얼마나 가나 보자’, ‘게임 캐스터가 쉬워 보이나 보지?’, ‘넌 안 돼’라는 말까지 들어봤다는 정소림은 그럴 때마다 더욱 의지를 다잡았다. ‘되나 안 되나 해보자’ 하는 오기를 가지고 버텼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독보적인 여성 게임 캐스터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 정소림 인스타그램

이렇게 19년을 게임 캐스터로 살아온 정소림은 국내에서 시행됐던 e-스포츠 리그 대다수를 거쳐왔다. 스타크래프트부터 정소림의 대표 리그라 할 수 있는 워크래프트3,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사이퍼즈와 지금의 오버워치까지.


새로운 리그에 들어갈 때마다 각자 성향과 특성이 다른 게임을 공부하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소림 역시 이에 동의하며 “장르를 넘어갈 때마다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했다”고 답했다.


매번 리그를 준비하며 정소림은 끝없는 공부의 늪에 빠졌다. 직접 선수를 찾아가 배우기도 하고, 고시 공부를 하는 것처럼 게임 아이템과 캐릭터를 달달 외우기도 했다.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들고 다니면서 외우는 것이 정소림의 게임 공부 비결(?)이었다.


그나마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에 대한 이해가 있었지만, 정소림의 대표 리그라고 할 수 있는 워크래프트3의 WCG(World Cyber Games)는 돌이켜보면 정말 힘들었던 리그로 손꼽을 정도였다.


당시를 회상한 정소림은 “중계를 담당할 당시 워크래프트3 리그가 국내에 없었고, WCG 중계 시작 시점에 합류했다”며 “리그가 꾸준히 열려야 공부를 하는데, 워크래프트3은 1년에 한국 대표 선발전과 그랜드 파이널 두 번만 한다. 그래서 매번 리셋되어서 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전했다.


새로운 게임에 뛰어드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정소림에게는 그만큼 보람 있고 즐겁기도 했다. 중계를 함께 하며 프로 리그로 성장한 게임도 있었다.


즐거웠던 리그 중 하나로 ‘스페셜포스 리그’를 언급한 정소림은 “리그 중간에 잠시 멈춰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내가 바톤을 이어 받고 나서 리그가 확대되어서 프로 리그까지 진행됐다”며 “내가 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시기가 잘 맞아 떨어졌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스페셜포스 리그의 성장을 함께 하며 정소림은 어떤 게임이든 하나의 장르와 리그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했다. 당시 가장 흥했던 스타크래프트 리그와의 격차는 물론 있었지만, 정소림에게는 잊지 못할 리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리그에서 활약했던 선수들과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인터뷰 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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