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라 불리는 현실의 야구소녀 박민서, '프로' 대신 '세계'를 꿈꾼다

임재훈 기자 / 기사작성 : 2020-06-09 15: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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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임재훈 기자] 지난 8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는 <야구소녀>라는 영화의 시사회와 함께 영화를 연출한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담당한 최윤태 감독은 <야구소녀>의 모티브가 지난 2017년 한 여자 리틀야구 선수의 인터뷰 기사였다고 밝혔다. 

 

▲사진: 박철희 씨

 

이 대목에서 곧바로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천재 야구소녀'로 불리는 박민서였다.

 

박민서는 한국 리틀야구 역사에 있어 최연소 또는 최초의 기록을 여러가지 보유하고 있는 '천재 야구소녀'로 통한다. 

지난 2016년 8월 당시 무학초등학교 6학년의 박민서는 성동 리틀야구단 소속으로 서울 장충리틀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기 전국 리틀야구대회에 출전해 서대문구리틀야구단과의 경기에서 팀이 0-6으로 뒤진 2회말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비거리 75m 짜리 투런 홈런을 쏘아올렸다. 

45년 역사를 가진 한국 리틀야구에서 나온 '최연소 여성 선수 리틀리그 홈런 기록'이었다. 아울러 한국이 세계리틀야구연맹에 가입한 1972년 이후 처음으로 국제 공인 여자 선수 홈런이기도 했다. 

기자는 최근 박민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는 기회를 가졌다.

박민서는 요즘 일주일에 두 차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레벨업 베이스볼 시스템 훈련장에서 하루 3시간 가량 웨이트 트레이닝과 타격 훈련 위주의 기술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훈련장에서 지켜본 박민서의 타격 훈련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형에 타고난 유연성을 바탕으로 물흐르듯 부드러운 스윙으로 임팩트 순간 배트에 체중을 실어 공을 때리는 모습은 남자 선수들의 타격에서 볼 수 있는 호쾌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사진: 스포츠W


야외에서 박민서가 친 공이 창공을 가르는 가르는 장면을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박민서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최근 훈련 상황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던지는 것을 안 하다가 며칠 전 처음 시작했어요. 던지는 폼을 저 스스로 마음에 안들어 하고 던지는 것이 불편해서 차근차근 고쳐나가고 있어요. 타격은 좀 더 편한 자세로 할 수 있도록 원래 하던 폼에서 살짝 수정하고 있어요."

영화 <야구소녀>에서 배우 이주영이 연기한 극중 주인공 '주수인'은 최고 구속 134km의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여자 투수로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기는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천재 야구소녀'지만 어디까지나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박민서는 국제 공인 기구가 인정하는 대회에서 남자 선수가 던진 공을 받아쳐 홈런을 만들어냈고, 투수로서도 시속 100km 대의 공을 던질 줄 아는 강한 어깨를 지닌 현실의 야구소녀다.

박민서가 생애 첫 공식 경기 홈런을 쳐낸 지 약 4년이 지났다. 그 동안 박민서는 중학교(행당중)를 거쳐 고등학교(성암국제무역고)에 입학했다.

그러는 사이 야구선수로서 박민서에게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여성 코치 저스틴 시걸이 자신의 SNS에 박민서를 소개했다.

 

미국 최대의 여자 야구 대회 ‘내셔널 걸스 베이스볼 토너먼트(2019 National Girls Baseball Tournament)’에 아시아 선수 최초로 초청을 받기도 했고, 국내 굴지의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통해 체계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

이같은 범상치 않은 과정을 거치며 박민서는 오랜 기간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왔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우연히 삼성 라이온스의 경기를 보기 위해 프로야구장을 찾아았다가 야구의 매력에 빠져든 야구소녀들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드물지 않은 이야기지만 직접 글러브질을 하고 배팅을 하면서 전문 선수를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박민서의 야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박민서 스스로 야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예전에는 야구가 무조건 좋았고 없으면 못 살것 같고, 죽을 때까지 야구만 하고 싶었어요. 못하든 잘하든 야구가 재미있었으니까 야구가 좋을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잘하면 기분 좋고 못하면 스트레스 받아요"

'천재 야구소녀'라고 불리는 데 대해서도 처음에는 그저 듣기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것 역시 생각이 달라졌다.

"천재 소릴 들을 정도로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이같은 변화는 결국 박민서 스스로 야구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열정을 넘어 야구 선수로서 야구를 잘 해내야 하는 의무감 내지 책임감이 싹 터있다는 의미로 읽혔다.

박민서는 중학교 졸업과 함께 4년간의 리틀 야구 생활과도 작별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2개월 정도 야구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리틀 야구를 졸업하고 2개월 동안 야구를 안했어요. 4년 동안 리틀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안 쉬었는데 코로나도 그렇고 2개월을 아예 공을 안 만졌죠"

 

▲사진: 박철희 씨


오랜 기간 경험해보지 못한 야구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여자 야구 선수로서 현실적인 고민도 싹트기 시작했다.

직업 야구 선수를 꿈꿨던 박민서의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고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대학을 다니면서 일본 여자 프로야구 리그에서 선수에서 뛰는 것이었다. 일본에는 현재 4개의 여자 프로팀이 활동 중으로 박민서에게 직업 야구 선수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목적지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본 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졌고, 이같은 사정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리틀 야구 졸업과 함께 소속팀이 없어지면서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그라운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박민서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더 깊은 고민을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고민의 시기, 박민서는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다.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프로 선수 외에 다른 진로에 대한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전해줬던 선생님과 깊은 소통을 나누면서 미래에 대한 답답한 마음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야구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을 찾았다. 현실의 야구소녀 박민서에게 찾아온 새로운 꿈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무조건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일본 여자 프로야구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단 한국에 있는 대학을 가려고 해요. 체육대학이나 체육을 전공으로 하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하려던 계획을 바꿔 국내 대학을 다니면서 기회가 있을 때 휴학을 한 뒤 일본이나 미국, 호주 등지에서 열리는 여자 야구 리그에 참가하겠다는 것. 

 

야구를 할 수 있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세계의 야구 소녀들과 함께 야구를 통해 소통한 뒤 너무 늦지 않은 시기 한국으로 돌아와 체육 교사나 여자 야구 관련 지도자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박민서의 '마스터 플랜'이다. 

 

▲사진: 박철희 씨


자신의 새로운 꿈에 대해 박민서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세계를 누비면서 야구를 하고 싶어요"

이미 박민서는 미국 초청 당시 또래의 여자 선수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며 '세계적인 야구선수'로서의 즐거움을 경험했다.

미국에 머물면서 자신보다 높은 기량을 지닌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더욱 더 기량을 끌어올려야 겠다는 동기부여도 갖게 됐고, 텍사스 레이저스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본고장 야구의 묘미를 만끽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세계를 누비며 야구가 줄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는 삶을 미리 경험해 본 셈이다. 
 

박민서는 이르면 올 여름 국내 여자야구 최강 팀인 '후라(Hurrah)'에서 야구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실전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타격은 이미 성인 여자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과 자질을 지니고 있는 만큼 앞으로 타격보다는 수비적인 능력을 보강할 생각이다. 다양한 팀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기존의 1루수에서 벗어나 유격수나 3루수로서 수비가 가능한 준비를 하려 하고 있다.

 

 

▲사진: 박철희 씨

 

그렇게 조용하지만 충실하게 준비하다 보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기회도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머지 않은 장래에 태극 마크 선명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박민서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박민서는 국내 대학을 진학하기로 한 만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한 입시공부도 최대한 잘하고 싶은 욕심이다. 그래서 기존에 배우던 일본어 외에 수학과 영어는 따로 과외 공부를 할 정도로 공부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프로'라는 어찌보면 좁은 영역을 벗어나 '세계'라는 넒은 꿈을 품게 된 박민서가 새로운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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